100년 기업? 구성원 생각을 하나로 모아라
50년 전통의 A화학의 신화학 회장. 신발이나 자동차 시트 등의 소재류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글로벌 기업의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생산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론 성장의 한계가 있었다. 지난 10년간 매출 성장세가 서서히 둔화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거래선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그린 에너지와 바이오 기술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잡고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예전과 똑같이 꼼꼼하고 신중하게만 일했다. 신속하게 결정하고 여러 가지 도전을 통해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론 곤란하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텐데….
마음이 무거운 신화학 회장은 최고경영자 과정 강의에 참석했다. 주제는 '가치관 경영'. '이 판국에 웬 가치관이람? 획기적인 혁신 방법이라도 가르쳐 주든지 원….' 그런데 2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신 회장은 무릎을 탁 쳤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바로 기업의 가치관을 세우는 일, 구성원의 생각을 모으는 일이었다. 직원마다 생각하는 미래가 다르고, 회사에 뭐가 중요한지 우선순위와 원칙이 없다 보니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지 못했던 것이다.
신 회장은 회사로 오자마자 전략기획실의 김 상무를 불렀다. "김 상무, 당장 우리 회사의 '생각을 모으는 일'을 시작해 보게. 필요한 부분은 적극 지원하겠네." 하지만 김 상무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한달간 분위기부터 띄워라
김 상무는 기업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부터 공부했다. 기업의 가치관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와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의미하는 ‘사명(Mission)’이다. 월마트(Wal-Mart)의 사명은 ‘사람들이 돈을 아껴서 더 잘 살도록 해준다’이다. 그래서 싼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전략을 집중한다.
둘째, 의사 결정을 할 때 중요시하는 우선순위를 ‘핵심가치(Core Value)’라고 한다. 이는 ‘우리 회사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된다. 구글은 ‘인터넷은 민주주의가 통하는 세상입니다’ 등 자신의 철학을 십계명으로 정리했다. 구글의 모든 사업은 철저히 십계명이 지향하는 방향대로 진행된다.
셋째, ‘미래상(Vision)’은 장차 우리 회사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다. 소니는 ‘일본 소비재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는 최고의 회사’라는 꿈을 가졌다. 그래서 대규모 OEM 요청을 받고도 포기했다.
김 상무는 회사의 가치관을 어떻게 수립할지 고민하다 오 팀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그는 “당장 닥친 일 처리하기도 바쁜데, 왜 그걸 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김 상무는 아차 싶었다. ‘그래, 직원들에게 이 일의 중요성과 필요성부터 알리는 게 가장 먼저겠군!’ 그리고는 곧바로 가치관의 개념과 중요성에 대한 교육자료를 만들었다. 신 회장에게 “직접 직원 설득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신 회장은 “내가 직접 직원들을 상대로 연설도 하고, 점심 시간 등을 이용해 직원들 의견에도 귀 기울여 보겠네”라고 호응했다.
한 달간의 공감대 형성 작업 동안 직원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어떤 목표로 일할지, 고객에게 뭘 제공해야 할지, ‘신속한 실행’과 ‘꼼꼼한 일 처리’ 중 어떤 것이 우선인지 등에 대한 혼란이 모두 가치관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2. 워크숍으로 본격적인 판 짜기
분위기 조성에 성공한 김 상무는 가치관 수립을 위한 ‘사전조사’에 들어갔다. 첫째 대상은 조직을 가장 잘 알고 비전을 고민하는 CEO와 경영진이다. 리더의 경영철학과 미래 방향성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핵심 임원과 계열사 대표는 물론이고, 평소 불만이 많은 간부들도 포함시키면 좋다. 시행 단계에서 불평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직원들이다. 기업의 현재 모습과 미래 방향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래상 수립에 반영할 수 있는 전략적 분석자료 조사다.
그런데 직원들이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외부의 목소리를 활용한 충격 요법을 써야 한다. 외부 전문가나 소비자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내부 시각과 얼마나 차이가 큰지 보여주는 것이다.
2주간의 사전조사에서 의외의 결과가 많이 나왔다. 회사는 그린 에너지와 바이오 기술에 미래를 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다른 임원이 의외로 많았다. 지금까지 성공 방식인 ‘꼼꼼하고 철저함’보다는 ‘창조와 도전’ 같은 가치를 원하는 직원도 상당히 많았다.
이제 가치관 수립을 위한 본격적인 ‘판’을 짜야 한다. 김 전무는 1박2일 팀장급 이상 워크숍을 통해 공개적 논의를 하기로 했다. 기업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만큼 시설이 좋고, 조별 토론이 가능한 곳으로 골랐다. 간부들에게 워크숍 전에 “직원들의 생각을 모아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35명의 임원·간부가 참석한 워크숍에서 김 상무는 “이대로 가면 미래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상황과 환경 변화, 미래 트렌드 등에 대한 얘기가 이어지자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공감되는 듯했다. 참석자들은 경쟁사 동향이나 성장성, 수익성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① 사명 만들기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된 듯했다. 바로 사명 만들기에 들어갔다. “우리 기업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그때 이사 한 명이 나선다. “그거야 당연히 화학제품 만드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는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겠고요.” 김 전무는 “그건 단순히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입니다.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캐묻는 과정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시간여의 토론 끝에 ‘A화학은 인류가 쾌적한 환경 속에서 보다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한다’로 사명을 정했다.
② 핵심가치 수립
다음은 핵심가치 수립이다. 신사업을 담당하는 오 전무가 나섰다. “우리는 지나치게 신중했어요. 성실히 일했지만 새로운 시도에 소극적이었죠. 이런 자세는 재빨리 기회를 포착해 움직여야 하는 신사업 쪽에서 아주 불리합니다.” 그러나 다른 임원은 “우리를 성공하게 만들었던 ‘성실’같은 가치를 버릴 수는 없다”고 했다. 4시간의 치열한 논란 끝에 ‘도전과 실험, 인재 중시, 정직과 성실’의 3개 가치에 합의했다. 특히 이전에 부족했던 ‘도전과 실험’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첫째 날 공식 일정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맥주를 한 캔씩 마시는 자리를 가졌다. 분위기는 훈훈했다. 토론 때 언성을 높였던 사람은 사과했고, 진작 이런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③ 미래상 수립
다음날, 마지막 단계인 미래상을 만들기 위해 ‘브레인 스토밍’을 시작했다. “20년 후 우리 기업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말도 안 돼 보이는 아이디어도 괜찮아요. 절대 남의 아이디어를 평가하지 말고 자유롭게 말해보세요.” 다음에는 ‘긍정적 근거 대기’ 시간이었다.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 얘기가 왜 가능한지 이유를 찾는 것이다. 마지막은 ‘현실적 비판하기’다. 목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냉정하게 따졌다. 미래상은 ‘2030년 글로벌 넘버원 브랜드 5개 이상을 보유하고, 매출액 10조 이상을 달성하며, 제품이 소비자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로 정해졌다.
워크숍 후 참석자들은 지친 가운데서도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정직’, ‘건강하고 편안한 삶’ 같은 말은 어찌 보면 흔한 단어 같지만, 그 의미를 따지는 과정은 아주 치열했다. 신 회장은 흡족해했고, A화학은 ‘가치관 수립’을 통해 ‘기업의 생각을 모으는 일’에 중요한 첫 단추를 끼웠다.
3. 새 목표 설정은 기업의 등대
사명을 만들 때는 이익보다는 회사의 일 자체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회사만이 창조할 수 있는 가치는 뭘까’를 따져보는 것이 좋다.
직원들이 기준을 못 세우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핵심가치가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어떤 원칙을 가장 우선하는지’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6개월간 사장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구성원이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핵심가치다. 어떻게 실천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수평적·창조적 문화를 가진 3M은 ‘도전정신’이 핵심가치인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직급에 상관없이 바로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강한 기업에선 ‘지정좌석제 폐지’ ‘부하에 발언권 부여’ 등 소극적 수준에 머문다. 핵심가치는 같아도 구체적 모습은 제각각일 수 있다.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1만m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를 기억하는가? 그는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으나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방황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새로운 목표’였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국가대표 선발’과 ‘아시아 최초로 세계 10위 내 들기’를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불과 7개월 만에 금메달을 땄다. 이처럼 미래상은 기업에 등대 역할을 한다. 듀폰은 100년 후, 구글은 300년 후의 미래상을 준비하듯 우리 기업도 조금 긴 호흡을 가질 필요가 있다.
1914년 IBM을 창립한 톰 왓슨(Watson)은 “나는 우리 기업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 처음부터 분명한 상(像)을 가지고 있었다. IBM이 대기업이 되려면, 그 훨씬 전부터 대기업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원 개개인에 대한 존경, 최고의 서비스 제공, 탁월한 업적 추구’ 등의 가치를 정립해 경영원칙으로 삼았다. 이런 IBM의 정신은 위기가 닥쳤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구성원들의 생각을 모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엔진에 힘을 불어넣는 가치관 수립.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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